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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박민규 지음 / 한겨레 출판
서점에 가면 가끔씩 책이 보내는 텔레파시를 느낀다. 박민규의 『삼미 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책도 그랬다. ‘삼미 슈퍼 스타즈’가 뭔지도 몰랐는데 그저 끌렸다. 그렇지만 한참 날 따라다녔던 한국 소설 울렁증 때문에 일 년 남짓한 사이에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하며 주저했다. 그리고 울렁증이 가라앉자마자 장바구니 목록 2위로 껑충 뛰었다. (1위는 김영하의 『검은 꽃』이었다.) 박민규라는 작가는 잘 몰랐지만, 추천 한국 작가 목록에 이름이 떡하니 있어 만족도는 올라갔다. 게다가 읽어보니 당당하게 나에게 텔레파시를 보낸 책답게 정말 유쾌하고 생각할 거리도 많았다. 늦게 받은 텔레파시가 아쉽기만 했다. 아니지, 늦게나마 텔레파시에 응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삼미 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는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 창단되어 1985년 6월 사라진 삼미 슈퍼 스타즈라는 야구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현대사에 대해서 열심히 가르치지 않았던 시절의 학생이었던 터라(뭐 지금은 국사 자체를 제대로 안 가르치지만 -_-;), 도입부에 1982년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지구상에 있었던 일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은 부분은 무척 흥미로웠다. 나중에 검색해 봐야지 하고 생각했던 부분도 있었으니 말이다. 여하튼 삼미 슈퍼 스타즈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사라진 팀이기에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이름이었는데 젊었을 적 야구를 좋아하셨던 엄마께 여쭤보니 당연히 안신다고 하셔서 몹시 신기했다.
삼미 슈퍼 스타즈에 푹 빠져 사는 어린 주인공을 보며 대학 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다. 비록 야구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잘 모르지만 나는 농구를 아주 좋아했다. 그 덕분에 대학 시절의 겨울방학은 늘 농구장에서 살았다. 서울 잠실의 2개 경기장(SK, 삼성), 부천 농구장(전자랜드), 안양 농구장(당시SBS, 現인삼공사)을 줄곧 드나들던 경험이 있어서 야구를 좋아하는 어린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했다. 물론 아쉽게도 연고지에 대한 애착이 있어서 라기보다는 선수가 좋아서 팀을 선택했기에 서울에서 태어나 이십여 년을 살았음에도 대구 오리온스 팬이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최근 대구 오리온스는 마치 삼미 슈퍼 스타즈의 길을 걷는 듯이 엉망인 팀성적을 보유 중이다.
December라는 공통점도 발견했다. 소설을 읽다가 내가 아는 음악, 특히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무척 기분이 좋다. 얼마 전 김영하의 『퀴즈쇼』를 읽다가 발견한 Muse의 Unintended도 나를 매우 설레게 했는데, 이번 독서 중에 발견한 George Winston의 December LP판은 정말 반가웠다. 이 앨범은 1988년에 대학에 들어간 주인공이 아마도 첫사랑일 여자를 우연히 길에서 도와주고 받는 선물이다. 그로부터 13년 후 고등학생이 된 내가 뉴에이지 앨범으로서는 처음으로 구입한 작품이었다.
책은 가볍게 흘러가면서도 마냥 웃지만은 못하게 인생에 대한 깊은 철학을 담고 있다. 특히 삼미 슈퍼 스타즈의 가장 큰 실수가 ‘프로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라고 지적하는 부분은 정말 옳다구나, 하고 무릎을 쳐야했다. 아니 중학생이 이런 걸 깨달아도 되는 거냐고. 정식 명칭 프로페셔널 세계는 ‘실로 냉엄하고, 강자만이 살아남고,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하고, 그래서 아름답다’라는 깨달음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이미 모든 사람에게 프로이기를 강요하며, 지극히 평범한 삶은 프로 중에서도 꼴찌라는 이치이다. 그렇다면 나는 평범한 삶으로서 꼴찌를 지키느냐,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 노력해서 1위에 오르느냐를 선택해야 할까?
그런데 어느새 삼십대를 넘기고, IMF를 맞아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하고, 부인과 이혼을 한 주인공은 삼미 슈퍼 스타즈의 야구를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과 떠난 전지훈련(?)에서 문득 깨닫는다.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숙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 숙제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남아 있는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를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공을 치고 던질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고, 어떤 야구를 할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278p)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278p)
주인공의 어렸을 때 깨달음과 성인이 되었을 때의 깨달음을 다시금 곰곰이 생각하고 있자니, 나는 프로 안에서의 일등과 꼴찌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은 나는 아직 프로의 자리에 서지 못한 것이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적어도 프로라는 이름은 한 번 얻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야 그 안에서 내게 필요한 것과 필요 이상인 것을 구분해 내지 않겠는가. 열심히 달려서 빨리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 때는 나도 이 책을 들고 삼천포에 한 번 들러봐야겠다.
『삼미 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라는 책을 읽게 되어, 그리고 박민규라는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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