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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감독을 겸해야 했던 김수겸과 농구 선수로서의 김수겸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한 팀의 감독으로서, 주장으로서 잘 해내 왔지만 이제 고작 고3뿐일 뿐인 '18세 소년'으로서의 김수겸을 살펴보겠다.

상양과 북산의 시합이 끝나고, 능남의 유명호 감독이 "김수겸이 처음부터 선수로서만 전념할 수 있었다면...  만약 확실한 감독이 상양에 있었더라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지켜보던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겠지만, 여기서 가장 선수 로서 뛰길 바랐던 건 김수겸 본인일 터이다. 팀 연습은 물론이거니와 개인 연습에도 더 열중해서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여름만큼은 고등학생 시절 내내 한이 됐던 이정환과 해남을 꼭 이기고 싶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김수겸 앞에 놓인 현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눈앞에 닥친 현실 속에서 팀에는 감독이 부재했고, 농구부 존속의 기로 속에서 김수겸은 중대한 결심을 해야만 했다. 결국 팀 내 주장이자 에이스 역할뿐만이 아니라, 상양 농구부 100여 명을 책임지는 감독의 역할까지, 모두 본인이 떠안고 가는 방안을 선택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본인이 모든 짐을 진 채 헤쳐 나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가장 동안이라고 해야 하나, 슬램덩크 내에서 가장 고등학생다운 얼굴이지만, 이정환의 말을 빌려 "감정을 억제하여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는 감독으로서와 냉정함과는 거리가 먼 선수"라고 하는 두 상반된 위치를 거의 완벽하다시피 오가는 모습이 나이에 비해 굉장히 조숙하게 느껴진다. 슬램덩크 내 선수들 중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이정환의 저 대사를 통해 저는 김수겸의 진짜 모습은 '선수로서의 김수겸'이리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때 본연의 모습이 나올 테고, 또한 선수로서의 김수겸의 모습이 감독을 맡기 전부터 갖고 있었던 본모습일 테니 말이다. 즉, 감독으로서의 모습은 본인에 의해 철저하게 다듬어지고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십여 년 전 김수겸을 처음 만났을 때는 '고등학생이 되면 다 저렇게 성숙할까?'라고 상상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되고 나서 보니 김수겸이 특별했다. 김수겸이 북산에서의 시합 중 북산이 아니라 해남만을 의식했던 것은 아직 어린 나이로서의 한계였다. 차라리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해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준 정대만이 훨씬 그 나이 또래답고 인간적으로 느껴지니 말이다.

더군다나 북산과의 시합이 끝나고 나머지 선수들이 엉엉 우는 모습에 비해, 김수겸은 고작 눈물 한줄기와 함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긴다. 가장 마음이 쓰라리고 엉엉 울고 싶을 것은 본인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끝까지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친구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을 테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마인드콘트롤도 김수겸만의 능력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태어났을 때부터 성격이 그럴 수도 있지만, 철저한 자기감정의 절제와 마인드 컨트롤은 성숙한 어른들도 쉽지 않은데 말이다. 다시 한번 김수겸에게 감탄하고 만다.

하지만 다음에서 소개할 장면에서 '소년다움'이 덧붙여짐으로써 김수겸이라는 캐릭터는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해남과 북산의 시합장 앞까지 왔던 김수겸이 '해남의 승리도, 패배도 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며 다시 등을 돌리는 장면이다.

지난 2년간 죽어라 싸웠지만, 이기지 못했던 상대 이정환과 해남, 도전도 못하고 끝난 마지막 여름, 나약한 소리 따위는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김수겸의 마음은 타들어 가다 못해 재가 되었을지도......ㅠㅠ (타도 해남을 외치며 겨울 선발을 노린다고는 하지만, 대학 입시 추천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고3 수험생으로서 위치도 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결코 뛰어넘을 수 없었던 이정환의 해남이 누군가에게 지는 모습도, 그렇다고 해서 해남이 이기는 모습도 보기 싫다는 이 모순된 감정이 본인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북산에 대한 질투와 섞여 표출된 이 대사에는 자신이 처한 현실과 운명을 조금은 탓하는 김수겸의 솔직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성현준과 장권혁은 김수겸을 그냥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없어도 크게 상관없는 장면이었지만, 김수겸의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이 대사를 통해 '고교 농구에 절대적 강자는 없다'라고 하는 '고교농구의 흥망성쇠'를 보여주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스토리가 어색하지 않은 장면인데, 2면이나 할애한 이 장면을 통해서 작가는 '김수겸'이라고 하는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만약 이 장면이 없었더라면 김수겸은 그냥 북산에게 제일 먼저 무너진 강호의 감독 겸 에이스로만 기억되었을 듯하다.

이 장면 덕분에 김수겸은 독립적인 주체로서 슬램덩크를 이끌어가는 수많은 주인공 중 한 명이 되었다.

 

+ 오타 수정: 2023년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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