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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김수겸은 왜 감독을 겸해야 했을까?

강호 상양 농구부에는 왜 '어른' 감독이 없었을까?

 


최소 5~6년은 가나가와 2위로 전국 대회에 출전했으리라고 보이는 상양 고등학교는 해남대 부속 고등학교와 더불어 가나가와 굴지의 농구 명문이다. 비록 17년 연속 지역 예선 우승이라는 해남대 부속 고등학교의 아성을 꺾지는 못했지만, 지난 몇 년간 자타공인 명실상부한 가나가와의 이인자였음은 틀림없다. 하지만 슬램덩크 원작에서는 이러한 명문고에 감독이 없다는, 조금 특별한 상황을 설정했다. 더군다나 여러 인물의 대사와 상황으로 보아 김수겸이 선수 겸 감독으로서 활약한 지는 조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름 인터하이 예선전을 5월 후반쯤 시작했고, [상양 vs 북산]전이 6월이라고 가정해 보자. 시드인 상양의 첫 공식 시합인데도 관전하러 온 사람들은 김수겸이 감독인 상황에 대해 거부 반응이 있기는커녕 놀라지도 않는다. 게다가 공식 라이벌인 해남대 부속 고의 '이정환'이나 다른 학교 감독들은 '감독'으로서의 김수겸과 '선수'로서의 김수겸이 어떤지 잘 안다. 즉, 김수겸이 상양의 감독을 겸한 것은 최소 6개월 이상, 즉 2학년 말 '겨울 선발' 때부터가 아닐까 추측한다. 물론 그 사이에 연습 시합도 했겠지만 말이다.

고작 열여덟 살인 소년에게 족히 백 명은 넘어 보이는 농구부원과 농구부를 맡겨야 했던 상양에는 과연 어떤 사연이 있을까. 팬들 사이에서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가설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원작에는 아무런 설명도 나와 있지 않으니 어느 게 옳다, 그르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내가 생각한 몇 가지 의견을 정리해 본다.

먼저 일본의 고등학교는 크게 '공립'과 '사립'으로 나뉜다. 원작에서는 가나가와현립 북산 고등학교를 제외하고, 다른 학교들은 공립인지 사립인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다만 추측하게만 할 뿐. 대개 에스컬레이터식 학교 해남, 그리고 스카우트가 가능한 능남과 상양은 사립이라고 추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고 확인된 바가 없으니, 감독이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 쉬운 '공립'일 경우부터 살펴보겠다.

상양이 공립일 경우

감독이 없는 이유는 공립 학교가 설명하기 쉽다. 일본의 공립 고등학교의 경우, 운동부에는 보통 '고문'이라는 형식의 담당 교사가 감독직을 겸하며, 교직을 맡지 않는 감독 전임을 데려오기 힘들다고 한다. 이런 점으로 보아, 북산 농구부는 행운아 집단이다. 농구부에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안 감독이 교직을 맡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니, 안 감독의 자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

공립은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한정적이며 감독이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다른 감독을 임시로 불러오기에는 한계가 있다. 명감독이 놀고 있을 리 만무하며 초빙하기에는 예산이 지나치게 많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임시로 불러온다 한들 수업을 맡는 것이 당연시되기 때문에, 이미 체육 교사가 있으면 혼란이 생기기 쉽다. 결국 농구에 재능이 있는 교사가 전근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하지만 나 역시 상양은 '사립고'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므로 상양이 왜 '사립고'인지, 왜 상양이 '감독'을 새로 뽑지 않고 김수겸 감독이라는 무리수를 두었는지 살펴보겠다.

상양이 사립일 경우 - 사립이라고 추정되는 이유

1. 정대만 중3~고1 회상씬에서 안 감독은 북산이 공립이기 때문에 정대만을 스카우트할 수 없다고 말한다. 북산 학생들은 정대만을 둘러싸고 "대만이는 강호인 해남대 부속이라든지 상양, 능남 등의 유혹을 뿌리치고 북산을 선택했어."라고 말한다. 이 두 대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점은 윤대협을 가나가와현 밖에서 스카우트하는 데 성공한 능남처럼 상양 역시 스카우트가 가능한 학교라는 점이다. 즉, 상양은 스카우트를 못 하는 공립이 아니므로 사립이다.

2. 상양의 교복은 '블레이져'식 재킷이다. 요즘은 일본 남학교의 교복에 '블레이져'식이 많아지고 있지만, 얼마 전만 해도 사립(특히 명문)은 블레이져식, 공립은 '가꾸란'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능남은 예외, 슬램덩크에서는 북산과 능남만 가꾸란)


3. 무척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백여 명은 족히 넘을 듯한 농구부원이 모두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적어도 상양 농구부에 돈이 없을 것 같지는 않다. 회비든 부모의 후원금이든 말이다. 공립은 학교에서 백 명이 넘는 부원의 유니폼 구입비를 다 대줄 만큼 사정이 넉넉하지 않으며 학생들에게 직접 구입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그런 까닭에 학교 재정이 어려워서 감독을 부르기 힘들다는 점은 조금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상양이 사립일 경우 - 진학 명문고 상양의 선택

사립일 경우, 내가 생각하는 가설은 '상양고등학교는 진학 명문고'라는 것이다. 타학교에 팬이 있을 정도면 [상양 vs 북산]전 당시 학교 응원단 사이에 여학생 팬들이 껴 있을 법한데, 전혀 눈에 띄지 않은 걸로 보아 상양은 남학교일 듯하다. 그리고 일본 내 대다수의 진학명문고는 남녀공학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진학 명문고인 상양이 1위가 아닌 매년 현 2위에 그치는 데다 전국 대회 8강전에서 아쉽게 패배한 '농구부'에 대한 지원을 끊은 것이 아닐까. 제 나름 활약을 하기는 했으나 해남대 부속 고에 밀려 어중간한 성적을 낼 바에는 차라리 공부에 매진해 명문대 진학률을 높임으로써 학교에 좋은 평판을 가져다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오사카의 풍전고는 농구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하여 감독을 교체하는 수를 쓰기도 했으나 상양이 이미 진학명문고로 자리를 잡았다면 굳이 감독을 교체해 가면서까지 농구 성적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농구에 열중인 학생들에게 성적이 상위권에 들지 못하면 클럽 활동 금지 조처를 내리는 게 학교 명성에 득일 테니까 말이다. 하다못해 북산도 낙제점수가 일정 이상 수 있을 때는 공식 시합에 나가지 못한다.

또한 자유로운 느낌의 공립(북산만 봐도 상하관계 엉망진창)보다는 상하관계 조직풍토가 훨씬 엄격한 사립이기에 김수겸이 감독을 맡는 일이 가능할 듯하다. 동급생은 물론이거니와 1~2년 차 선배의 말을 반항 없이 듣기 위해서는 김수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충성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감독 김수겸

앞에서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았는데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다. 그리고 위에서는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많이 다뤘으나 슬램덩크가 만화인 만큼 어디까지나 상양에 감독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북산에게 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경기를 이끄는 사령탑 역할인 포인트가드이자 팀의 에이스인 선수가 코트에 서지 못한다는 점은 상양에게 엄청난 핸디캡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후에 작가가 밝히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현재 김수겸은 상양 농구부를 이끌어 가는 감독이며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타도 해남'을 외치며 결행한 팀의 리빌딩, 그리고 수비 위주인 팀의 전술, 장신과 스피드를 조화시키는 훈련 방법까지 모두 김수겸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다. 심지어 김수겸이 2학년 때 상양은 키가 작은 편이어서 스피드 위주로 시합하는 팀이었다. 학교의 외면 속 열악한 팀 사정에도 불구하고 강인하게 팀을 이끄는 카리스마도 감독으로서 김수겸이 멋진 이유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고등학생이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은 게 당연하고, 김수겸 또한 벤치에 앉아 있는 것보다 직접 경기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텐데 그것을 참아가면서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고 선수들을 챙기며 지시하는 데 힘쓰는 점이 참 멋지다. 그래서 김수겸이 좋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선수로서의 김수겸을 많이 못 보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내 마음속에서 김수겸은 언제나 최고이다. 비록 여름 인터하이 지역예선전에서는 북산에게 그 자리를 내주어야 했으나 고등학교 마지막 겨울 선발에서만큼은 꼭 '타도 해남', 그리고 전국에서의 좋은 성적을 달성하기를 바라며.



작가의 말

상양은 실제로 존재하는 고등학교의 상황을 따 왔다. (학교 이름이 쇼요-상양의 일본 이름-는 아님) 농구부에 감독이 없어서 주장인 4번 선수가 감독 역할을 대행했는데 경기가 어려워지면 유니폼을 입고 나와서 선수로서 시합에 참가했다. 김수겸처럼 포인트가드는 아니었지만 대단한 농구실력을 가진 선수였다. 상양은 전통의 강팀이지만 북산에게 져야 했기에 그러한 설정에 가장 적합했고, 에이스이자 주장인 4번이 벤치에 앉아 있어야만 하는 핸디캡은 이야기의 흐름상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깊고 더함: 2023년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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