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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왕국』/ 최인호 / 열림원
현대의 양국간 주요 쟁점에 대해 이 두 사람이 앞장서서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면, 고대 한일을 철저히 파헤쳐 숨겨진 역사의 비밀을 풀어간 사람이 있으니 바로 최인호 작가다. 작가는 1984년 우연히 KBS 역사기행에 리포터로 참석했을 때 소설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학교 국사 시간에는 한반도의 삼국이 왜에 건너가 한자, 불교, 그림 등 최신식 문화를 전파했다고만 배웠는데 일본의 고대 유적을 추적하고 다니는 동안 그보다 더 엄청난 무언가가 숨어 있으리라는 직감이 그에게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 그리고 비밀의 열쇠를 담은 이 책은 개정판에 이르기까지 100쇄가 넘게 팔려 나갔다.
광개토 대왕 시대부터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기까지 시대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한 이 소설은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는 역사 추리 소설이다. 다 읽는 데에 무려 오 개월이나 걸렸다. 고작 다섯 권을 읽기에 더없이 긴 시간이었지만 어디까지 허구이고 어디까지 진실일지에 대한 판단과 역사적 무게가 나를 힘들게 했다. 그저 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엔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가 한일 양국을 직접 발로 뛰며 찾아낸 유산들로 인해 진짜라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승자 신라에 묻히고 일본의 역사 왜곡 속에 그저 그런 나라로 사라진 '백제'에 대한 재조명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백제를 '잃어버린 왕국'이라는 칭한 비유가 딱 맞다. 또한 고대부터 지금까지 일본과 뗄레야 떼지 못할 관계에 있음을 절감했다.
대학에서 일본학을 공부하면서 왜 일본고대사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오사카 근교에서 한국에도 없는 百済(くだら、백제)라는 지명과 기차역을 보고 신기하다고만 생각했지 깊이 연구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분명 흥미로웠을 텐데 몹시 아쉽다. 게다가 소설적인 요소만 제외한다면 이 책 역시 바로 논문으로 한일 양국에 발표해도 좋을 만한 내용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이 책을 일본어로 번역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내 실력이 된다면 얘기인데, 일본 출판사에서는 허락하지 않을 테니 자비 출판을 하려면 공부하며 돈부터 벌어야겠다.
아참 독후감을 쓰다 보니 문득 생각났다. 책 전반에 걸쳐 일본 이름의 한자를 한국식으로 읽기도 하고 일본식으로 읽기도 해서 읽느라 헷갈렸다. 특히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지식과 섞여 읽으면서는 불편하게 왜 이랬을까 싶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한반도 출신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대화체를 제외하고 모두 한국식으로 한자를 읽으려 했던 듯하다. 역사 속 인물들을 배려하는 작가의 치밀함에 다시 한 번 찬사를 보낸다.
얼마전 우연히 교보에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 사인받을 기회가 있어서 작가 님께 "일본에 대해 공부하는데, 잃어버린 왕국 정말 잘 읽고 있습니다. 대단하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사랑합니다라고 싸인 옆에 써주시면서 꼭 안아주셨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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