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크라바트(Krabat),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박민수, 비룡소

▷ 독일

내가 도전하고 있는 '팝슈거 독서 챌린지'에 '전혀 읽어본 적 없는 어린이 고전'이라는 항목이 있어서 무엇을 읽으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중에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가 지은 『크라바트』라는 책을 발견했다. 독일에서 1971년에 출간된 판타지 아동 문학으로, 수백 년 전의 유럽을 무대로 삼고 있다. 떠돌이 소년 크라바트는 꿈속에서 마술사인 방앗간 주인의 부름을 받고 방앗간으로 찾아가 일을 시작한다. 금요일에는 동료 직공 열한 명과 함께 까마귀로 변신하여 주인에게 마술을 배운다. 마술을 할 줄 알면 일을 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권력과 부도 쉽게 거머쥘 수 있다는 점을 배우지만, 더 이상 육체와 영혼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알게 된 자유의 소중함, 주인 때문에 억울하게 목숨을 앗긴 친구들과의 우정과 사랑 등 다양한 가치를 깨닫는다. 방앗간에서 생활한지 3년이 지나고 수제자였던 크라바트는 주인 편에서 안락한 삶을 누릴 것인지, 자유를 되찾고 친구들의 복수를 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독일의 한 시골 마을을 아름답고 섬세하게 묘사했으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방앗간의 비밀이 한 꺼풀씩 벗겨지는 게 무척 흥미진진했다. 


02. 리틀라이프(A little life), 한야 야나기하라, 권진아, 시공사, e

▷ 미국

태어나자마자 십여 년간 겪어야 했던 최악의 삶,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처럼 성인이 된 그에게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최선의 삶이 펼쳐진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평생 원하고 바랐던 양부모님, 좋은 직장, 좋은 집, 남들이 인정하는 잘생긴 얼굴과 큰 키 등. 하지만 지독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행복을 만끽해야 할 그를 잠식하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불안이다. 과연 이 삶이 진짜일까? 실감이 나지 않아서 주드는 자해를 한다. 매일 행복해서 매일 팔을 긋는다. 살기 위해 자해를 한다. 과연 '나 같은 것'이 이런 삶을 누려도 되는 걸까? 그들이 나의 실체를 알게 되면 어떡하지? 끔찍한 과거의 악령들이 그를 좇는다. 또다시 팔을 긋는다. 팔에 불을 붙이고 몸을 벽에 던진다. 죽기 위해 자해를 한다. 어린 시절 겪은 모진 성적 학대와 폭력 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집요하고도 끈질기게 보여준다. 읽는 내내 안쓰럽고 안타깝다. 눈물이 나서 책을 닫았다가 궁금해서 다시 열고 그의 삶을 들여다 본다. 연민을 느끼다가도 답답해서 속이 터진다. 이만큼 왔으면 이제는 주변인을 믿고 행복만을 누려도 좋을 텐데. 어렸을 때 잔혹하게 그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처들은 주드가 성인이 되어 꽃길만 걸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최선'이 '최악'보다 갑절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상처는 더더욱 깊어질 뿐이다.
대개 선과 악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악을 담당하는 캐릭터들이 입체적이어서 매력적이게 마련인데, 이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은 점이 좋았다. 악은 그저 철저히 나쁜 놈들이다.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주드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동안 누가 누가 더 핵폐기물급 쓰레기인지 싸우는 바람에 '독해' 자체가 고통스러워서 육두문자와 함께 이북리더기 우측 사이드 키를 정신없이 누르기도 했다. 현재의 주드를 둘러싼 중심인물인 배우 윌럼, 건축가 멜컴, 예술가 제이비, 의사 앤디, 양아버지 해럴드, 양어머니 줄리아 등. 누가 누가 더 천사인지 겨루는 인물들이 마냥 '선'은 아니다. 성격마다 장단점이 뚜렷하고 제각기 한계도 분명하다. 그래서 때로는 주드에게 또다른 상처를 주거나 기존의 상처를 더 아프게 후빈다. 하지만 늘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혹은 다시 돌아와서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주드를 품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의 사랑에, 그들의 우정에 바깥에서 바라보는 나는 위로 받는데 주드는 끝내 그러지 못한 것이 몹시 슬펐다.

우정은 상대방의 더딘 불행을, 길고 긴 지루함을, 간간이 찾아오는 승리를 목격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가장 비참한 순간들에 함께 있을 수 있는 특권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그 대신 자기도 그 사람 옆에서 비참한 모습을 보여도 되는 것이다. (1권)

그의 기관들은 망가져버렸다. 그는 기억에 빠져 익사할 것이다. 뭔가 해야 했다. 그는 노력했다. 평생동안 노력했다. 다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깨끗해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1권)

어딘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키스할 때, 섹스할 때 간다고 하는 그곳으로 자기도 곧 갈 수 있을 거라 상상한다. 그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땅이자 보고 싶은 곳, 그에게 영원히 금지되어 있지 않았으면 하는 그 세계로. (2권)

마치 인생이 그에게 용서해달라고 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인생을 원망하지 않도록, 인생이 계속 앞으로 가게 허락해주도록 금은보화를 쌓아놓고 온갖 아름답고 근사하고 바라던 물건들로 그를 질식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2권)

그 모든 실수와 밉살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실수와 밉살스러움 때문에 누군가에게 자기가 특별한 존재라는 믿음이 들어 눈물이 난다. (2권)

가장 끔찍한 '만약' 들은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다. 모든 좋은 '만약' 들도 마찬가지다. (2권)


03.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난다

▷ 한국. 2013년~2017년 

정말 오래간만에 우리말로 사유하는 '어른'의 글을 읽었다. 최근 약 5년 사이에 우리가 겪은 순탄치 않았던 정치사회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냈던 산문을 모은 책이다. 워낙 성숙한 어른의 글이라서 옳은 것이 무엇인지 사유하고 그 참됨을 지키려는 그 속내를 다 좇지는 못해 때로는 내 마음이 어지럽기도 했으나 우리 사회에 이런 지성인이 있었다는 점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후배로서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과거형이라는 점이 슬플 뿐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도 성숙한 어른으로 더욱 성장하고 싶다. 언제부턴가 소설이든 수필집이든 번역서 위주로 읽다 보니까, 아무리 잘된 번역이라고 한들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우리글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04. 아버지의 유산(Patrimony), 필립 로스, 정영목, 문학동네

▷ 미국. 1900년대 후반

필립 로스가 뇌졸중에 걸린 아버지의 투병과 죽음을 지켜보는 과정을 산문으로 푼 수필집이다. 필립 로스의 소설을 읽을 때면 '이 작가는 도대체 아버지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라고 생각될 때가 많았던지라 필립 로스가 보는 그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와의 관계에 무척 호기심이 일었다. 하지만 우리네 사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부모자식 간이었을 뿐이어서 아주 잠깐 놀랐다. 서로에게 집착하고 집착하면서 어쩔 수 없이 '애'에 '증'이 섞일 수 밖에 없는 관계. 다정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필립 로스 특유의 유머를 섞어 아버지의 노년, 삶과 죽음에 대해 풀어나간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상이 하나하나 다 생명력을 얻어 살아 숨쉬는 작품이 된다.

아버지가 말했다. "그게 죽음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게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개자식들도 데려간다는 게." (p.243)


05. 나르치스와 골드문트(Narziß und Goldmund), 헤르만 헤세, 임홍배, 민음사

▷ 독일. 1300년대

헤세 스스로 '나의 성장기 체험이 고스란히 담긴 내 영혼의 자서전'이라고 일컬었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었다. 각 종교(지성)와 예술(감성)을 대변하는 두 인물,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우정 및 사랑, 삶 이야기이다. 제법 길지만 성장 소설이라서 술술 읽을 수 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수도원에서 만나 우정을 나눈다. 나르치스는 수도원에 남아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수도사의 길을 걷고, 골드문트는 세상에 나가 예술을 배우고 많은 이들과 사랑을 나누며 방랑하다가 다시 나르치스의 곁으로 돌아온다. 정말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두 캐릭터의 성격과 대사,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스티브 로저스와 제임스 뷰캐넌 반즈를 떠오르게 하는 부분이 있어서 읽는 내내 엄마 미소가 절로 나왔다. 

너는 예술가고 나는 사상가야. 네가 어머니의 품에 잠들어 있다면 나는 황야에서 깨어 있는 셈이지. 나에겐 태양이 비치지만 너에겐 달이 별이 비치고, 네가 소녀를 그리워한다면 나는 소년을 그리워해…… (p.74)

아,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모든 인간, 모든 사물이 그렇게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순식간에 꽃처럼 피어났다가 어느새 시들어 사라지고, 그러고는 그 위로 눈이 내린다. (p.278)

내가 살아온 인생에는 사랑이 빈곤하고, 나의 인생에서 무엇보다 결여되어 있는 것이 사랑일세. /중략/ 그런데도 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면 그건 자네 덕분일세. 자네만은 사랑할 수 있었으니까. 사람들 가운데 오직 자네만을 말일세. 이게 나한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네는 어림도 못할걸세. 그건 사막에서 솟구치는 샘물이요, 황무지에서 꽃을 피우는 나무와 같은 걸세. 나의 마음이 황폐하게 메마르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이 닿을 수 있는 자리가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자네 덕분일세. (p.470)

나 역시 늘 자네를 사랑했지. 나르치스, 내 인생의 절반은 자네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일들이었네. 자네도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자네가 나한테 말하리라고는 한 번도 기대한 적이 없었다네. 자네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이제 자네는 나를 사랑했다고 말했네. 나한테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바로 이 순간에, 방랑도 자유도, 세상도 여자들도 모두 나를 곤경에 버려두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 말일세.(p.471)


06. 화씨 451(Fahrenheit 451), 레이 브래드버리, 박상준, 황금가지, e

▷ 미래 세계

사람들은 매스미디어에 중독되어 쾌락만을 좇아가고, 세상에 대해서 배우고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독서는 금지된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과거에 불을 끄는 이들이 있었다면, 이 세상에는 불을 지르는 이들이 있다. 책은 발견되는 즉시 모두 불태워진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태우는 직업에 충실하던 방화수 몬태그는 퇴근길에 우연히 클라리세라는 옆집 소녀를 만나면서 행동과 생각에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클라리세는 호기심 많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느끼고 싶어하는 생동감 넘치는 소녀였다. 세계관 설정도 흥미롭고 각 인물들의 성격이나 특성도 좋았는데, 아무리 이 세상이 우연으로 이루어진 곳이라고는 해도 너무 개연성 없이 인물들이 서로 만나고 사라지는 등 이야기가 진행되다 말고 끝난 느낌이라 좀 아쉬웠다.


07. 그들(THEM), 조이스 캐롤 오츠, 김승욱, 은행나무

▷ 미국 디트로이트. 1900년대 중반

어쩌다 보니 9월에는 아주 길고, 몹시 고통스럽고, 그런데도 무척 아름다운 소설 두 편을 연달아 읽는다. 『리틀 라이프』가 한 인물의 연대기였다면 『그들』은 한 가족의 연대기이다. 1937년 여름부터 1967년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까지의 시대를 배경 삼아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인생을 버텨야 했던 가족의 적나라한 이야기를 담았다.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누지만 그 남자친구는 친오빠에게 총을 맞아 죽고, 경찰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그 경찰은 로레타를 성폭행하고, 임신한 로레타는 당연한 수순처럼 자신을 성폭행한 경찰의 가족이 된다. 안정적이지만 행복은 없는 삶 속에서 줄스와 모린이 태어나고 대물림되는 가난과 폭력, 불행의 틈바구니에서 그들의 인생 역시 순탄지 않게 흘러간다. 두께도 상당한 데다가 책 속 인생살이가 너무 고달파서 읽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특정한 시간이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은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 시간이 진짜라고 믿고, 거기에 자신의 삶을, 자신이 가진 모든 힘과 마음을 쏟는다. 하지만 오랫동안 길이길이 남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을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을까? (p.287)

세상은 계속 돌아갑니다. 계속. 선생님이 우리에게 가르친 책들은 이런 것을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뒤죽박죽 뒤엉킨 현실은 어딘가에 감춰져 있었어요. 선생님이 우리에게 가르친 책들이 대체로 거짓말이라는 것을 저는 분명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p.452)

저는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제 인생에는 형태가 없습니다. 아무 형태도 없습니다. 밤에 혼자 누워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바로잡을 수 없는 증오, 형태를 부여할 수 없는 증오로 꿈틀거립니다. 상대 남자들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자신을 내어주는 모든 여자들, 우리 모두는 겁에 질려 뱃속에 고통과 비슷한 미움을 품고 빨리 걷습니다. 그런 것에 대해 선생님은 무엇을 아세요? 선생님은 책을 씁니다. 아는 것이 무엇이기에? (pp.469~470)


08. 아무도 원하지 않은(Kuldi),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 박진희, 황소자리, e

▷ 아이슬란드. 1970~2010년대 

6개월 전, 전처인 라라가 아파트에서 죽은 이후 열한 살짜리 딸을 키우기 위하여 이혼남 오딘은 정보 조사위원회로 직장을 옮겼다. 하루 아침에 달라진 삶 속에서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오딘은 동료의 사망으로 40년 전 문을 닫은 크로쿠르 소년보호소에서 정부의 귀책 사유가 발생할 학대나 인권 유린이 일어났는지 조사하는 일을 맡게 된다. 과거 몇몇 아동보호 시설에서 심각한 학대가 자행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정부가 뒤늦게 같은 시기 보호소들의 운영 실태를 조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크로쿠르 소년보호소와 관련된 민원은 없었으나, 당시 보호소가 문을 닫기 직전 에이나르와 토비라는 소년이 자동차 배기가스에 질식해 숨진 사고가 있었음을 알게 된 오딘은 그 사고에 숨겨진 비밀을 찾기 위해 애를 쓴다.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실을 향해 달려간다. 얽히고 설킨 인연 사이에서 결말은 정말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으나 꽤나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09. 핼러윈 파티(Hallowe'en party), 아가사 크리스티, 왕수민, 황금가지, e

▷ 영국.

"저는 살인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어요!" 즐거운 핼러윈 파티를 준비하 자리에서 한 소녀가 자랑 삼아 떠벌린 말이 불러온 참사. 우연치 않게 그 파티 자리에 참석했던 올리버 부인은 오랜 친구인 포아로 탐정에게 연락을 한다. 파티 도중 사망한 소녀의 죽음을 밝히기 위헤 달려온 포아로 탐정은 죽은 소녀가 언급한 '살인'이 아주 오래 전 마을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사건을 해결한다. 주요 사건의 트릭은 뻔한 편이었지만, 그 뒤에 얽히고 설킨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다.


10. 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The penguin lessons), 톰 미첼, 박여진, 21세기 북스, e

▷ 아르헨티나. 197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교사 일을 하게 된 영국 청년이 우루과이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기름에 뒤덮여 폐사한 마젤란펭귄 중 살아남은 한 마리를 구조하여 같이 살게 된 이야기이다. 펭귄의 이름은 후안 살바도르. 아르헨티나의 혼란과 격변의 시기, 암울하고 불안한 시절 세인트조지의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특별한 친구가 생겼다. 가볍게 읽기 좋은 수필집인데, 귀여운 후안 덕분에 읽는 내내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11. 19호실로 가다 (To Room Nineteen), 도리스 레싱, 김승욱, 문예출판사, e

▷ 영국. 1960년대

1960년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었는데, 왜 2018년의 대한민국이 겹쳐 보이는 것일까, 참 신기할 노릇이다. 소설집에 실린 열한 편의 단편은 대체로 괜찮은 직업과 연륜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결혼, 가정, 남성에 의해 객체가 되어 버린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표제작인 「19호실로 가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완벽한 가정 속 주부인 수전이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절실히 찾는다. 남성이 주체인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여성이 어떻게 무력해지고 정체성과 독립성을 잃어가는지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사랑의 낭만과 환상을 잃은지는 이미 오래지만 새삼 무자비한 도리스 레싱의 펜 끝을 쫓아가다 보니 더욱 한숨만 나온다. 하지만 그 안에서 제 나름대로 연대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니 약간의 희망도 생긴다. 전체적으로 답답하면서 씁쓸했지만 공감대가 많고 각 작품마다 개성이 뛰어나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서 또다른 초기작을 모은 단편집 『사랑하는 습관』도 샀다. 곧 읽어야지.

"내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당신은 알아요. 그리고 당신은 사실 일이 어떻게 되든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걸 내가 알고요."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꿈꾸는 사람과 꿈꾸지 않는 사람, 그런데 양쪽 모두 상대를 경멸하거나, 간신히 참아주는 경향이 있다. (두 도공)

하지만 뭔가를 이해한다면 그것을 용서할 수는 없다. 용서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 하는 것이다. (19호실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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