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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문학동네

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가 돌아왔다. 단편소설로만 간간히 안부를 전하던 김영하가 5년만에 장편소설을 들고 돌아왔다. <이상문학상> 수상 소식 이후 바로 만나는 작품이라 더 반갑기 그지없다.

인터넷 서점에서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떠오른 건 인디밴드 델리스파이스 데뷔 앨범에 실린 <챠우챠우>라는 곡이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문장으로만 이루어진 노래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노래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책을 손에 쥐기까지 한동안 내 머릿속에서 무한 반복으로 재생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노래에서 제목을 따왔다는 기사를 보았다. 반면 아니라는 기사도 있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책을 읽고 있자니 노래 한 곡이 더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델리스파이스 네 번째 앨범에 실린 <항상 엔진을 켜둘게>라는 곡이다. 마치 <챠우챠우>와 <항상 엔진을 켜둘게>의 절묘한 믹스버전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든다.

김영하의 소설답게 흡인력이 끝내준다. 그 안에 무슨 내용이 담겼든 간에 일단 쉽게 읽혀서 그의 글을 좋아한다. 문학이랍시고 겉멋만 잔뜩 부리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 말을 늘어놓는 건 딱 질색이다. 김영하의 글에는 여전히 오래 고민했음직한 참신한 문장들이 곳곳에 눈에 띄고, 구성과 스토리도 탄탄하다. 웹서핑을 하던 중에 어디선가 ‘박민규가 매력이 통통 튀고 개성이 넘치는 미녀라면 김영하는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운 컴퓨터 미녀다’와 비슷한 글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그 면모는 이번 소설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빈 데는 굳이 채우지 않은 채 빈 데로 남겨두었다고 하는데 그것조차도 다 철저히 계산된 술수에서 비롯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달까. 작가적 치밀함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내 눈에는 다 계획된 것처럼 보일 뿐이니 그저 순수한 팬심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소설도 비록 좋아하는 주제는 아니었을지언정 술술 잘 읽었다. 청소년들의 집단 난교나 학대 등 읽기 거북한 부분도 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현실에서는 그보다 더 심한 일도 많이 벌어져서 소름이 돋았다. 묘사해 놓은 사건 중 하나를 뉴스에서 본 기억이 있어서 검색해 봤다. 현실에는 "나는 히어로 같은 게 되겠다는 게 아냐. 사람이 사람한테 저래서는 안 된다는 거야. 내 말이 어려워? (p.116)"라고 외치는 제이가 없었던 탓인지 그 결말이 더욱 잔혹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목소리를 잃은 그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 동안은 끌끌 혀를 차며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했는데 ‘그들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와 같은 그들 내면에 담긴 목소리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일었다. “저것들도 당해봐야 알지.”라고만 치부하는 건 그들이 가족 혹은 학교에서 유년시절 겪은 일을 내가 당해보지 않았기에 쉽게 뱉는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반성과 함께. 우리는 너무 어렵고 복잡한 사회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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