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책,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조원규, 들녘

책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도대체 '위험한 책'이 뭐지. 얼굴은 사라지고 책이 그 자리를 채운 인간의 모습이 그려진 표지도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책을 열자마자 책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열거가 나온다. 책장에서 떨어져내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머리를 맞아 반신마비가 된 노교수, 책을 꺼내려다가 다리가 부러진 사람, 지하 공공도서관에서 일하다가 폐결핵에 걸린 사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몽땅 삼켜버린 뒤 소화불량으로 죽어버린 칠레산 개, 그리고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읽으면서 길을 걷다가 차에 치어 세상을 떠난, 화자의 연인이자 동료였던 블루마…….
블루마가 죽고 난 뒤 그녀의 연구실로 한 책이 배달되어 온다. 시멘트가 덕지덕지 발라져 있는 조셉 콘래드의 <the shadow line>. 발신지는 우루과이. 왠지 이 책을 돌려주어야 할 것만 같은 사명감에 휩싸인 화자는 지구반대편의 먼 남미로 여행을 떠난다. 몬테비데오에서 만난 애서가, 델가도를 통해 <the shadow line>의 주인이었던 카를로스 브라우어에 대해 듣게 된다.
책을 지나치게 좋아하여 침실은 물론이거니와 욕실까지, 자신의 거처를 모두 내줘버린 브라우어. 2만 권 가까이 되는 책의 분류와 배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집을 떠나 모랫바람이 부는 바닷가에 책으로 집을 지어 살지만 사랑을 느꼈던 블루마의 부탁으로 인해 시멘트 속에서 책 한권을 찾게 되고 결국 책으로 지은 집은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거처를 알 수 없게 된 브라우어...집착을 넘어선 광기는 갈 곳을 잃은 채 막을 내렸다.
책을 위험하다 말하고 있지만, 책을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한 권의 책을 이해하기 위해 스무 권의 책을 읽고, 뒤틀리거나 틈이 생기지 않는 재질로 만든 책장, 책에 먼지가 앉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달아 놓은 유리문 등 델가도의 서재는 특히 부러움의 극치였다. 난 언제쯤이나 그런 서재를 마련할 수 있을까.독후감을 끄적이며 주위를 둘러본다. 두 면을 가득 메운 책장에 책이 가득 쌓여 있다. 읽은 책도 많지만 안 읽은 책도 많다. 게다가 조만간 내 방에 도착하기 위해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 책도 있다. 책을 좋아하고 열심히 읽으며 사대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꾸 숫자에 집착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더욱이 브라우어나 델가도처럼 책에 대한 조예가 깊은 수준에 달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에게 책이 '위험요소'로 작용하지 않도록 내 독서습관과 방법에 대해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책에 중독된 사람의 피부는 약간 양피지 같아 보인다는데, 나는 아직 멀었다.


나는 내가 어떤 책 한 권에라도 흥미를 느낄까 봐, 그래서 그걸 집으로 가져가 점점 손쓸 겨를 없이 불어나는 책들의 거대한 식민지에 추가하고, 그 책들이 벽을 따라 쌓이고 복도로 넘쳐날까 봐 지레 겁이 났다. (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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