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현대문학


  행복했던 약 5주, 그리고 힘들었던 열흘간의 시간이 끝났다. 아직 잠도 잘 못자고, 입맛이 없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지만, 게다가 가끔씩 눈물이 베어나오는 것도 여전히 멈추지는 않지만 (도대체 내 몸인데 왜 컨트롤이 안되는거야!!) 적어도 좋아했던 마음 그리고 헤어짐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껏 좋아했고 마지막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니깐 이걸로 됐다. 몸은 내가 원하는대로 움직여주지 않지만 마음만큼은 시원섭섭하게 정리되었다.  
  어제 저녁 모든게 확실히 끝이 나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과 찜질방에서 수다도 떨고 실컨 웃었다. 그리고 피곤에 지쳐 쓰러진 불편한 잠자리에서 뒤척이다가 아침에 집에 돌아왔다. 몸도 마음도 완전히 넉다운인데 잠을 이룰 수 없어서 수면제 한 알을 입에 넣고 쿨쿨. 덕분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푹 자긴 했지만 고작 3시간 만에 눈을 뜬 것에 절망해야 했다.
 정말 오래간만에 친구들과의 약속조차 잡지 않았던 휴일 (졸업공연 꼭 오라고 초대장까지 챙겨 준 JH오빠한테는 미안), 막상 시간이 남아 도니 뭘해야 할지 몰라서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 있어 보기도 하고, 평소에 틀지도 않는 TV 앞에서 노래하는 가수들을 바라보며 멍때리기도 했다가 으쌰으쌰 스트레칭도 했다가 답답한 마음 앗싸리 펑펑 울어 볼까 싶어 책장에 꽂혀 있던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꺼냈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전작인 '연을 쫓는 아이'를 읽고서도 엉엉 울었었는데,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더 슬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실컨 울 자신이 있었다. 흠... 그런데 충격이다. 식욕, 수면욕도 멈춰버린 이 상황에서 내 넘쳐나던 감수성도 잠시 모습을 감췄나보다. 아아,, 참담한 아프간현실에 탄식은 나오지만 전혀 눈물이 나지 않는다. 열흘동안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이 메말라버린걸까. 가끔씩 멍때리다가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 보면 그건 아닌데. 넌 가랑잎 굴러 가는 것만 봐도 웃기냐, 낙옆 떨어지기만 해도 눈물나냐는 말을 수백번 들었던, 영화보다 오열해서 친구가 챙피해했던 '나'는 어디로 간걸까?? 
 
  '천개의 찬란한 태양'에서도 '연을 쫓는 아이'와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애환을 그려냈다. '연을 쫓는 아이'가 남자들의 이야기였다면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약 30년간의 아프간 역사와 그 속에 살고 있는 마리암과 라일라,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마리암은 부잣집 주인과 가정부의 사생아이다. 가정부였던 그녀의 어머니와 마리암은 아버지의 집에서 쫓겨나 어느 산중턱의 판잣집에서 외로이 살아간다. 그녀의 아버지가 찾아오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살아가는 마리암은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하며 집에 찾아가지만 얼굴을 보지도 못한채 쫓겨난다. 그리고 마리암이 아버지를 찾아간 사실에 절망하여 자살한 어머니. 홀로 된 마리암은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지만 의붓어머니들의 눈총과 질시로 고작 15살이었을 때 저 먼 카불의 사십넘은 구두장이 라시드에게 팔려가듯 시집을 가게 된다. 견딜 수 있었던 결혼생활이었지만 몇 번의 유산으로 끝내 아이를 못 낳게 되자 폭력과 학대는 점점 심해졌다.   
  라일라는 예쁘고 똘똘한 소녀였다. 그녀에겐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온 동네오빠 타리크가 있다. 전쟁이 격화되고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하게 된 라일라와 타리크는 마지막 이별의 순간 첫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후 타리크는 떠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라일라의 집에 포탄이 떨어지고 라일라는 부모님까지 잃고 만다. 라시드와 마리암에 의해 구조된 라일라는 라시드의 계략에 의해 타리크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뱃속에 있는 타리크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라시드와 결혼을 한다. 
 처음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라일라와 마리암. 그러나 라일라가 두 아이를 낳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누구보다도 아끼게 된다. 그러던 중에도 라시드에 의한 두 여자의 학대는 더욱더 심해지며 지옥같은 생활이 계속된다. 전쟁이 끝나고 탈레반이 승리하면서 평화는 찾아오지만 여성들에 대한 새로운 억압이 시작된다. 여성은 학교와 직장에 다닐 수 없으며, 남자친척이 동행하지 않으면 밖에 나갈 수도 없다. 병원에서 치료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라시드의 구두가게가 불에 타 없어지고 끼니마저 잇기 힘들어진 상황이 된 가족은 딸 아지자를 고아원에 맡긴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라일라와 죽지않은 타리크는 재회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라시드의 폭력이 거세지자 마리암은 삽으로 라시드를 죽이고 만다. 라일라와 아들 잘마이, 타리크와 딸 아지자를 떠나보내고 마리암은 자수를 하여 총살형을 당한다. 
  멀리 타국으로 떠났던 라일라와 가족들은 고국이 평화로워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도중에 마리암의 고향에 들렸던 라일라는 마리암을 위해 그의 부친이 남겨두었던 편지를 읽는다. 마리암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 슬픔이 가득 배어있는 편지였다. 마치 억압속에 갇혀 있던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을 작가가 위로하려 하는 듯이. 혹 남성위주의 세상에서 남성들을 대표하여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에게 사과를 하려 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행이도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연을 쫓는 아이'에서도 그랬듯 작가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놓지 않는다. 카불로 돌아와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공부를 가르치는 라일라의 마음 속에는 마리암의 희생이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 되어 남아있다. 언젠간 아프가니스탄에도 그 찬란한 태양의 눈부신 광채가 빛날거라고 믿으며.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있던 나의 상황과 달리 거의 600p에 달하는 이야기를 정신없이 읽어내려갔다.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과 흡입력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나의 무지함에 일침을 가하는 생생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이야기에 비록 눈물은 못 흘렸지만, 가슴이 너무 아련하다.
 라일라와 타리크, 아이들이 아무리 고통이 있다 한들 추억과 향수가 어려있던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나도 곧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거다. 잠 많고 식욕 많고 웃음 많고 울음 많던 나로... 그 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새해들어 등한시했던 블로깅도 독서도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지. 으랏챠챠 화이팅!


2010년 02월 20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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