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5일, 베이징 캐피탈 국제공항

사진 출처 : WEIBO 喵禅




톰 로빈스(Tom Robbins)는 되게 생소한 작가였다. 구글링할 때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이 각색하고 연출한 『카우걸 블루스(Even Cowgirls Get the Blues), 1993)』의 원작자라는 점이 눈에 띄었는데, 국내 검색창에서는 별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재작년에만 이름을 두 번 접했다.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 덕분이다. 2015년 말 영화 「마션」 홍보를 위해 방중(訪中)한 세바스찬 스탠이 인터뷰에서 화성에 혼자 남겨진다면 들고 갈 책으로 『Still Life With Woodpecker(1980)』[각주:1]을 꼽았다. 먼저 『호밀밭의 파수꾼』을 꺼냈다가 네 팬들은 그 책을 다 읽었을 거라고 인터뷰이가 말하자 바꿔 말한 터라 어떤 내용일지 궁금한데 슬프게도 우리나라에는 번역서가 없다. 그 인터뷰 이후 한 팬이 세바스찬에게 '이렇게 훌륭한 책을 소개해 줘서 고맙다, 내 인생 책 중 한 권이 되었다'라고 SNS[각주:2]에 남기자, 세바스찬은 '내게 그랬듯 당신에게도 특별했다니 기뻐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나도요. (T-T) 영어 서툰 게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또 한번은 모델 겸 화가인 마일즈 맥밀란(Miles McMillan)[각주:3]의 여행 가방에서 발견한 책이다. 배우나 가수 등에 비해 대중에 대한 노출 빈도가 훨씬 적은 모델의 팬이 되었을 때 처음 마주한 장벽은 떡밥이 너무 적다는 부분이다. 인지도가 낮으니 당연히 팬덤도 적고, 이는 곧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몹시 한정적이라는 말과 통한다. SNS를 적당히 하기는 하지만 열흘 넘게 새로운 사진 한 장 안 뜨는 날이 수두룩하다. 가수의 팬들처럼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을 달래지도 못하고, 배우의 팬들처럼 필모그래피를 몇백 번이고 돌려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늘 정보에 목말라 있고 아주 작은 정보 하나라도 허투루 다루지 못한다. 

2015년 봄 타미힐피거 30주년 기념으로 베이징에서 열린 2015 Fall 컬렉션 패션쇼에 서기 위해 마일즈는 중국을 방문했고, 다행히도 중국에는 마일즈를 좋아하는 팬이 몇 분 계셨다. 마일즈가 비행기 안에서 SNS를 올린 이후, 이제나저제나 중국에 도착할까, 언제쯤 비슷한 공기를 마실까 기다리는데 생각지도 못한 공항 사진이 떴다. 마중을 나간 팬이 찍은 사진이다. 얼굴[각주:4]만 예쁜 게 아니다. 조물주의 손길은 구석구석 섬세하게 미쳐서 뒤태도 몹시 곱다. 사진에서 마일즈 다음으로 눈에 띈 건 가방에 꽂혀 있던 책 한 권, 바로 톰 로빈스의 『지터버그 향수(Jitterbug Perfume)』이다. 모델 데뷔 초 지면 인터뷰에서 최근에 읽은 책이 뭐냐고 묻자, 비행기에서『럼 다이어리(The Rum Diary)』를 읽었다고 답했는데, 장거리 비행할 때마다 책 한 권씩은 꼭 들고 타는 게 아닐까 추측한다.

이야기가 어땠는지 마일즈의 감상은 알 수 없지만 단 몇 페이지라도 읽었을 그 순간을 공유하고 싶어서 책 제목을 확인하자마자 국내 서점 사이트에서 검색을 했다. 톰 로빈스의 작품 중 유일하게 번역서가 있다. 다만 2005년에 출간된 이 책은 10년 사이에 절판이 되었기에 알라딘 중고서점을 통해 구해야 했다. 정가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했지만 가격이 가격인지라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아서 읽는 내내 마음이 좀 쓰라렸다. 덧붙여, 원서는 한 권짜리이고 퍽 두껍지도 않은데 구태여 분권할 필요가 있었을까. 

전근대와 현대를 정신없이 오가는 이 소설은 영생과 향수에 관한 이야기다. 10세기 보헤미아에 있는 한 작은 부족 국가에서는 왕에게 흰머리가 나면 영적 능력을 상실한 증표로 보고 죽인 뒤 새 왕을 뽑는다. 죽고 싶지 않았던 왕 알로바는 가짜 독을 먹고 죽은 척했다가 탈출한 뒤 티베트에서 쿠드라라는 여인을 만난다. 연을 맺은 두 사람은 불멸의 비법을 체득한 뒤 천 년 가까이 인도, 티베트, 콘스탄티노플, 파리, 뉴올리언스 등을 떠돌며 살아간다. 과거의 인물들이 천 년을 거슬러와 그간의 깨달음으로 '꿈의 향수'를 만드려고 할 때, 다른 한편의 현대에는 '꿈의 향수'를 노리는 집단이 맞부딪는다. 현실을 벗어난 환상적인 요소가 많아서 이야기는 흥미진진했지만, 100세 시대도 버거운 내게 영생을 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집중을 방해해서 책을 읽는 데도, 글을 쓰는 데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책을 다 읽은 건 작년이고,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한 것도 작년인데 벌써 2017년도 열흘이 훅 지났다. 올해는 흘러가는 대로 냅둔 작년과 달리 계획도 좀 세웠는데, 거창하지 않은데도 겨울은 너무 추워서 벌써 지친다. 영생을 꿈꾸고 근접하게 목표를 달성한 알로바와 쿠드라를 보며 조금은 자극을 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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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17.01.20 09:57 신고

    을유 문학전집 검색하다 우연히 들어왔는데 요런 글 너무 좋네요ㅎㅎ
    해외연예인들은 책을 많이 읽는 것 같아서 신기하고 어떤 책을 읽나 궁금했는데
    잘 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nurish.kr BlogIcon dec18수요일 2017.01.31 11:15 신고

      ㄴ 고맙습니다. :D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한해도 즐거운 일 가득 넘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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